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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복잡한 일을 뒤로 하고, 남편이 공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와 있다. 논문이라는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어서 매일매일 동네 카페들을 탐방하며 원없이 남들이 쓴 글을 읽고, 내가 쓴 글을 다듬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오늘 본 논문 중에 가루다 프로젝트에 대해 재미난 시각으로 해석해 놓은 글이 있어 내가 잊지 않고자 정리해볼까 한다. Emma Colven이라는 지리학자가 UCLA 재학 당시 (지금은 오클라호마 대학 교수) 투고한 글로, 'Understanding the Allure of Big Infrastructure: Jakarta's Great Garuda Sea Wall Project" 라는 제목의 아티클이다. 

이 글은 '대체 자카르타는 왜 hard water infrastructure를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거대 제방이나 댐 등 물 관리를 위한 hard infra는 여러 가지 사회, 경제, 환경적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에 점점 수요관리나 후방예측(backcasting: 사용량을 정해놓고 그 양에 맞게 전략을 수립하는 방식)을 중심에 두는 soft path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모든 트렌드를 역행하는(!) 엄청난 공사인 가루다 프로젝트가 런칭되었으니 학자로서 의아할 만 하다. 게다가 가루다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을 보면, 지반침하의 주요 원인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은 결여된 채, '자카르타가 물에 잠기니 제방을 지어야 해!' 라고 빼액 거리는 수준에 불과해 대체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나 싶기까지 하다. (많은 학자들은 지반침하의 원인이 과도한 지하수 사용과 무분별하게 지어진 건물의 하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Emma는 자카르타가 지니고 있는 '모-던, 인터네-셔널 컴플렉스'의 관점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수까르노는 인도네시아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세계에 그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자카르타를 'Modern and international city'로 만들고자했다. 이 기조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신질서 시기에도 이어져 고층 빌딩과 럭셔리한 호텔로 도시를 치장하는 도시개발이 계속되었고, 2018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MRT 개통, 고속도로 증설 등 끊임없이 인프라 확장을 이끌어 왔다. 

이런 와중에 항상 도시의 주변부이자 어부, 빈민들로 가득 찼던 북부 자카르타는 자카르타의 모던한 이미지 완성을 위해 손 대야 할 마지막 공간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기존 토지에 잔뜩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생각하자면, 해안 개발은 새롭고도 편안한(?) 방법임에 틀림없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17개의 섬 개발 계획이 세워졌으나 아시아 경제위기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근래에 들어 가루다 프로젝트에 모든 해안 개발 사업이 포섭되어 진행되기 시작했다. 

즉, 가루다 프로젝트는 싱가폴에 비견하는 모던 인터네셔널 시티로 거듭나기 위한 자카르타의 오랜 바램을 완성해 줄 소중한 사업인 것이다. 게다가 홍수 방지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레버리지로 원조도 받아낼 수 있으니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얼마나 '효자템'일까 싶다. 

인도네시아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나는 이 곳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많은 시간을 인도네시아라는 공간에서 보냈지만, 누군가 나에게 인도네시아 전문가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부인할 수 밖에 없다. 정말 아는 게 없다 ㅠ 

요즘 논문 때문에 '쇼크 독트린'(나오미 클라인 저)이라는 책을 주의 깊게 읽고 있다. 그 중 책의 초반부에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나오는 이야기가 있어서 잊지 않게 적어보고자 한다. 그렇게 수도 없이 인도네시아를 다녔건만..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던 내가 부끄럽고 뭐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네시아는 수카르노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IMF와 세계은행이 서구 다국적 기업들의 이득을 반영하는 단체라고 비난하며 탈퇴했다. 수카르노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였지만, 약 300만 명의 활동적인 당원을 가진 공산당과 제휴해서 일했다. 이에 미국과 영국 정부는 수카르노 통치를 종식시키기로 결심했다. 상세한 기록에 따르면, CIA는 "상황과 적절한 기회를 봐서 수카르노 대통령을 제거하라."는 고위급 지령을 받았다.

여러 번의 실패 후, 1965년 10월 드디어 기회가 왔다. 수하르토 장군은 CIA를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한 뒤 좌파들을 처단하기 시작했다. CIA는 지도자급 좌파 인사들의 리스트를 수하르토의 손에 은밀히 쥐여주었다. 또한 미 국방부는 무기를 제공하고 무전기도 보내주었다. 수하르토는 군인들을 보내 CIA가 전해준 '저격 리스트'에 오른 좌파 인사 4,000~5,000명을 체포했다. ... 저격 리스트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조직적인 살인행위도 일어났다. 수하르토는 종교적인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학살을 시킨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한 달 동안에 '불과 수천 명에 의해' 최소한 50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해되었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교육을 받은 인도네시아 경제학자들이 버클리 마피아로 불리며 국가 미래의 경제적 청사진을 마련했다. 수하르토는 버클리 마피아 멤버들로 내각을 구성했다. 그리고 무역장관과 워싱턴 주재 대사를 포함한 주요 경제 요직에 앉혔다. 버클리 마피아는 정부가 국내 경제의 운영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쌀 같은 기본 품목을 적정가격에 공급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도네시아의 광대한 광물과 석유자언을 원하는 외국 투자가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다. 결국 구리, 니켈, 목재, 고무, 석유 같은 인도네시아의 국가자원은 전 세계의 대규모 광업회사들과 에너지회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수하르토는 대중 탄압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국가를 쇼크상태에 빠뜨려 저항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몇 주 전만 해도 국가의 독립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벌벌 떨며 수하르토와 심복들에게 권한을 내주었다. 수하르토와 버클리 마피아는 쿠데타 이전에 미리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점이다. 쿠데타는 정적인 민족주의자를 없앤 데서 그치지 않고, 인도네시아를 세상에서 다국적 기업이 활동하기에 가장 편한 환경으로 바꾸었다. 

 

논문작업

2017. 7. 22. 01:54 | Posted by 기뉴등장

단발성 행위를 좋아하고 현장활동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필드워크 이후 내가 보고 들은 것을 해체, 분석하여 글로 표현하는 데스크워크를 필요로 하는 논문작업의 긴긴 여정을 견디기가 힘이 든다.

대학원생의 할 일이자 본분이 논문 쓰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나의 단타적이고 즉각적인 것을 즐기는 성향은 분명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게다가 필터링 없이 내 마음대로 원하는 글만 써 버릇 해서 투고 후 심사->재심 등의 과정을 감당하고 수행해 나가는 것 조차 쉽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내 안에만 머물러 있던 지식이 모두의 지식이 되고 세상에 내어놓은 나의 자식같은 존재가 되는 거겠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매우 어렵고 괴롭다.

방학같지 않은 방학, 열대야를 피해 매일 밤 연구실로 도망오면서 남편과는 "내일 만나"라는 인사를 주고 받는 방학. 박사과정 들어온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땅을 파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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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잊는 내가 싫다

2017. 6. 3. 01:33 | Posted by 기뉴등장

작년 말, 두 손에 짐을 가득 들고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며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뒤꿈치 뼈가 부러지는 '종골골절'이라는 것을 경험하였다. 다리 한 쪽 불편한 게 어찌나 내 삶을 뒤흔드는지, 그 어떤 것도 나 혼자 할 수가 없었고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했다. 

불편함도 불편함이었지만, 그 때 나는 '과연 내가 나을 수 있을까?'라는 이상한 불안감에 사로잡혔었다. 지금의 아픔이 이렇게 심한데 정말 내가 치유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내 다리가 나으면...' 리스트를 만들어서 이것도, 저것도 해 봐야지!라고 생각했고, 그 중 하나는 보행이 불편한 장애우들을 섬기는 봉사를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정확히 반 년이 지난 오늘, 넘어졌던 그 자리를 유유히 내 두 발로 지나쳐 오다가 문득 느끼는 바가 있었다. 깁스를 풀고 내가 좀 살만 해지고, 이제 다시 뛸 수 있게 되자 그 때의 나와 했던 약속은 마치 없었던 것인 양 살고 있는 내가 보였다. 

석사를 지나 박사과정에 들어온 지금, 처음 이 공부를 시작할 때 뜨거웠던 마음과 열정이 가치없는 것인 양 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부끄럽다. 자꾸 초심을 잊는 내가. 

여전히 내 스스로에게 속마음을 들켜 뜨끔하게 되는 순간이 두렵고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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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

2016. 11. 7. 01:07 | Posted by 기뉴등장

개인적으로 인생사에서 굵직굵직하다고 평가받을 만한 일을 처리하느라 참 바빴다. 바빠서 이 블로그는 내팽개쳐지고, 급기야 티스토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기억 못 하는 지경까지 왔다. 

요즘의 근황은, 학교-집-학교-집을 오가면서 연구와 가정생활 외에는 아무 곳에도 관심두지 않고 사는, 철저한 오타쿠형 라이프를 살고 있는 중이다.

업데이트를 좀 더 해보자면, 감사하게도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제서야 공부다운 공부를 하는 기분이다. 석사 때 뭐 아는 것이 없어서 밑빠진 독에 물을 한 2년정도 내리 붓다가, 이제는 독에 물이 조~~금 고이는 것 같다. 연구하고 싶은 것들은 너무 많고, 나는 너무 미약해서 갈 길은 아직 멀었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insight들과 상황들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행인 것은 공부가 재미있다. 아직 실력이 일천해서 내 머리속에서 이해된 것들을 글로 끄집어 내기가 영 어렵지만, 하나하나 분절되게 이해되었던 개념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맥락으로 보여질 때 정말 너무 기쁘다. 앞으로 약 4년쯤 더 독에 물을 붓다 보면, 그래도 남들 지나갈 때 물 한 컵 떠서 건네 줄 수 있는 지식은 가지고 있겠지. (..?ㅎㅎ) 

10년 뒤 쯤 지금 내 생활을 회상하면서 '다시는 그렇게 빡세게 살 수 없을 것 같다'라고 기억될 만큼 열심히, 충실히 지금의 삶을 살아내고 싶다.

새벽 1시의 연구실은 항상 감성이 터지게 만드는군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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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너질 때

2015. 8. 12. 12:39 | Posted by 기뉴등장

잘 살다가도 어느 순간 무서워질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 널리고 깔린게 인재들인데, 과연 그 가운데서 내가 살아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일 할 자리가 있기는 한걸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이 말로 나를 달랜다 - God takes me as I am. 


나의 어떠함이 아닌 그냥 나의 존재로도 괜찮으니까. 그냥 그 흐름에 몸을 맡기자. 

위대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존재의 이유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나 자체로 사랑받는 존재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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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난다는 것

2015. 4. 16. 10:23 | Posted by 기뉴등장

3년 전 쯤이었나. 허리춤까지 내려왔던 머리카락이 한 순간에 너무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예배 내내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교회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고 나가서 그 긴 머리를 단발로 확 자르고 돌아온 날의 개운함을 잊을 수가 없어 그 이후로 내 머리카락은 어깨를 지나 본 적이 없다. 


무 자르듯 머리카락을 자른 그 날 이후, 나에게 있어 '시간이 지났다'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머리를 묶을 수 있다'가 되었다. 머리를 묶을 수 있을 만큼 머리카락이 자라면 다시금 내 마음이 콱 답답해지면서 미용실로 달려가야 했다. 그래야만 뭔가 내 인생에 필요 없는 것을 솎아냈다는, 그야말로 trim의 환희를 느낄 수가 있었다. 


부쩍 뜨거워진 (항상 그랬지만) 자카르타의 열기 때문에 시원한 사무실에 들어와서도 땀이 난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묶는 것처럼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 잡았는데! 거뜬히 묶일 만큼 자라버린 내 머리카락이 느껴진다. 아 답답하다! 맘 편히 내 머리를 맡길 만한 곳도 없는 이 곳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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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하며

2014. 10. 29. 10:31 | Posted by 기뉴등장

천성적으로 블로그 꾸미기 및 관리 따위는 못 함에도 불구하고 이 티스토리 블로그를 열게 된 것은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정보난에 허덕였던 그 어려움을 누군가는 좀 덜 겪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주인인 나조차도 가끔 한 번 들르는 이 블로그를 통해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나도 내 기억속에서 흘려버릴 수도 있을 정보들을 모아놓는 공간이 생겨 참 기쁘다. 그러나, 때때로 이 블로그를 통해 불쾌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어서 진지하게 그냥 나만을 위한 비공개 블로그를 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통 입시와 관련한 질문을 받을 때 그런 불쾌한 일을 겪는 경우가 많다. 궁금한 것이 많아 개인메일을 보내는 열정까지는 박수칠 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기소개도 없이 '정보 내놔' 따위의 예의 없는 요구에는 반응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나의 학업계획서를 참고하겠다고 달라고 한다든지, 본인의 학업계획서 첨삭을 부탁하는 등의 행동도 그저 나를 어이없게 만들 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깊은 다짐을 하며, 언젠가 밸이 꼬일 대로 꼬여 확 그냥 정보의 Enclosure 운동을 벌이는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푸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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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전기장판까지 마련해 놓고 밤낮없이 학교에서 살고 있는 요즈음의 생활패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던 끝에, '이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이제부터 자정에 정확하게 취침하고 6시에 딱 일어나서 기숙사 교회 새벽기도 갔다가 운동도 갔다가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실천에 옮긴 지 1일째이다.(ㅋㅋ)

낙성대에서 타는 02번 마을버스는 항상 만원이다. 낮,밤,주중,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로 꽉 꽉 찬 버스에 올라타는 것에 이제 익숙하다. 그렇지만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선 오늘은 솔직히 빈 버스를 기대했더랬다. 그런데 저 멀리서 정류장을 향해 좌회전을 하는 버스의 실루엣이 심상찮다. 벌써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맙소사. '누가 이 시간에 학교에 가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버스에 오른 순간 나는 몸둘 바를 모르겠었다. 아니 솔직히 당황했다. 

그곳에는 한 눈에 봐도 환경미화원 아저씨들과 식당에서 일하실 것 같은 아주머니들이 자리를 꽉 꽉 채워서 앉아계셨던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그들은 집에서 부랴부랴 나와 이 신새벽에 관악 02번에 몸을 싣지 않으면 안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신 것이다. 

어쩌면 각자가 사회에서 맡은 몫이 있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모르는 이들의 삶을 발판삼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짙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섬겨주시는 저 분들이 없다면? 

오늘도 나는 그분들의 삶의 무게를 내 어깨에 얹고 공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두운 곳에 켜진 밝은 등불을 그릇으로 덮지 않듯이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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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참 고되다

2014. 8. 11. 01:55 | Posted by 기뉴등장

그냥. 

삶이 참 고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로 고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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