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기뉴등장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모든 복잡한 일을 뒤로 하고, 남편이 공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와 있다. 논문이라는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어서 매일매일 동네 카페들을 탐방하며 원없이 남들이 쓴 글을 읽고, 내가 쓴 글을 다듬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오늘 본 논문 중에 가루다 프로젝트에 대해 재미난 시각으로 해석해 놓은 글이 있어 내가 잊지 않고자 정리해볼까 한다. Emma Colven이라는 지리학자가 UCLA 재학 당시 (지금은 오클라호마 대학 교수) 투고한 글로, 'Understanding the Allure of Big Infrastructure: Jakarta's Great Garuda Sea Wall Project" 라는 제목의 아티클이다. 

이 글은 '대체 자카르타는 왜 hard water infrastructure를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거대 제방이나 댐 등 물 관리를 위한 hard infra는 여러 가지 사회, 경제, 환경적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에 점점 수요관리나 후방예측(backcasting: 사용량을 정해놓고 그 양에 맞게 전략을 수립하는 방식)을 중심에 두는 soft path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모든 트렌드를 역행하는(!) 엄청난 공사인 가루다 프로젝트가 런칭되었으니 학자로서 의아할 만 하다. 게다가 가루다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을 보면, 지반침하의 주요 원인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은 결여된 채, '자카르타가 물에 잠기니 제방을 지어야 해!' 라고 빼액 거리는 수준에 불과해 대체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나 싶기까지 하다. (많은 학자들은 지반침하의 원인이 과도한 지하수 사용과 무분별하게 지어진 건물의 하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Emma는 자카르타가 지니고 있는 '모-던, 인터네-셔널 컴플렉스'의 관점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수까르노는 인도네시아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세계에 그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자카르타를 'Modern and international city'로 만들고자했다. 이 기조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신질서 시기에도 이어져 고층 빌딩과 럭셔리한 호텔로 도시를 치장하는 도시개발이 계속되었고, 2018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MRT 개통, 고속도로 증설 등 끊임없이 인프라 확장을 이끌어 왔다. 

이런 와중에 항상 도시의 주변부이자 어부, 빈민들로 가득 찼던 북부 자카르타는 자카르타의 모던한 이미지 완성을 위해 손 대야 할 마지막 공간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기존 토지에 잔뜩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생각하자면, 해안 개발은 새롭고도 편안한(?) 방법임에 틀림없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17개의 섬 개발 계획이 세워졌으나 아시아 경제위기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근래에 들어 가루다 프로젝트에 모든 해안 개발 사업이 포섭되어 진행되기 시작했다. 

즉, 가루다 프로젝트는 싱가폴에 비견하는 모던 인터네셔널 시티로 거듭나기 위한 자카르타의 오랜 바램을 완성해 줄 소중한 사업인 것이다. 게다가 홍수 방지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레버리지로 원조도 받아낼 수 있으니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얼마나 '효자템'일까 싶다. 

인도네시아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나는 이 곳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많은 시간을 인도네시아라는 공간에서 보냈지만, 누군가 나에게 인도네시아 전문가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부인할 수 밖에 없다. 정말 아는 게 없다 ㅠ 

요즘 논문 때문에 '쇼크 독트린'(나오미 클라인 저)이라는 책을 주의 깊게 읽고 있다. 그 중 책의 초반부에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나오는 이야기가 있어서 잊지 않게 적어보고자 한다. 그렇게 수도 없이 인도네시아를 다녔건만..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던 내가 부끄럽고 뭐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네시아는 수카르노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IMF와 세계은행이 서구 다국적 기업들의 이득을 반영하는 단체라고 비난하며 탈퇴했다. 수카르노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였지만, 약 300만 명의 활동적인 당원을 가진 공산당과 제휴해서 일했다. 이에 미국과 영국 정부는 수카르노 통치를 종식시키기로 결심했다. 상세한 기록에 따르면, CIA는 "상황과 적절한 기회를 봐서 수카르노 대통령을 제거하라."는 고위급 지령을 받았다.

여러 번의 실패 후, 1965년 10월 드디어 기회가 왔다. 수하르토 장군은 CIA를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한 뒤 좌파들을 처단하기 시작했다. CIA는 지도자급 좌파 인사들의 리스트를 수하르토의 손에 은밀히 쥐여주었다. 또한 미 국방부는 무기를 제공하고 무전기도 보내주었다. 수하르토는 군인들을 보내 CIA가 전해준 '저격 리스트'에 오른 좌파 인사 4,000~5,000명을 체포했다. ... 저격 리스트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조직적인 살인행위도 일어났다. 수하르토는 종교적인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학살을 시킨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한 달 동안에 '불과 수천 명에 의해' 최소한 50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해되었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교육을 받은 인도네시아 경제학자들이 버클리 마피아로 불리며 국가 미래의 경제적 청사진을 마련했다. 수하르토는 버클리 마피아 멤버들로 내각을 구성했다. 그리고 무역장관과 워싱턴 주재 대사를 포함한 주요 경제 요직에 앉혔다. 버클리 마피아는 정부가 국내 경제의 운영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쌀 같은 기본 품목을 적정가격에 공급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도네시아의 광대한 광물과 석유자언을 원하는 외국 투자가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다. 결국 구리, 니켈, 목재, 고무, 석유 같은 인도네시아의 국가자원은 전 세계의 대규모 광업회사들과 에너지회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수하르토는 대중 탄압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국가를 쇼크상태에 빠뜨려 저항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몇 주 전만 해도 국가의 독립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벌벌 떨며 수하르토와 심복들에게 권한을 내주었다. 수하르토와 버클리 마피아는 쿠데타 이전에 미리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점이다. 쿠데타는 정적인 민족주의자를 없앤 데서 그치지 않고, 인도네시아를 세상에서 다국적 기업이 활동하기에 가장 편한 환경으로 바꾸었다. 

 

http://www.mongabay.co.id/2013/10/10/penelitian-indonesia-negeri-paling-awal-di-dunia-akan-alami-dampak-ekstrem-perubahan-iklim/

오랫만에 꼭두새벽 출근에서 벗어나 진정한 프리랜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배 위에 노트북 얹어놓고 구글 검색놀이를 하다가 '요새 인도네시아에 기후변화 관련된 이슈가 있나' 싶어 쳐 본 키워드 Perubahan suhu 즉, 기후변화. 가장 위쪽으로 보이는 기사를 클릭했는데, 결국엔 한숨으로 창을 닫았다.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또 든다.

 

 

 

위 그림은 세계 각지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이 시작되는 해를 나타낸 것이다. (University of Hawaii 연구) 가운데 빗금이 쳐져 있는 곳은 바로 적도. 다른 위도에 비해 훨씬 빠르게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을 받을 것이 예측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적도가 그들의 영토 위로 지나가는 나라이다. 한마디로 곧 그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지도의 오른쪽을 보자. 모든 도시들 중 가장 앞선 2020년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이 시작되는 도시가 바로 인도네시아아의 Manokwari 라는 곳이다. 수도인 Jakarta도 2029년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안심하긴 힘들겠다.

최근 자카르타에서 일어난 사상 최악의 홍수. 잊을 만 하면 터지는 화산. (인도네시아 영토 내에서 무려 19개의 화산이 '경고'수준이라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만드는 쓰나미.

 

난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 깔리만딴 섬에 위치한 신땅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덕에 내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은, 자카르타에서 한시간 반을 날아가서 뽄띠아낙Pontianak이라는 도시에 도착해서, 그곳에서부터 기본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오지 중에서도 오지여서 가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신땅 근처에서 대규모 팜 플랜테이션이 조성되면서, 비가 자주 와 지반이 약한 길에 덤프트럭들이 하루에도 수십대씩 지나다니는 바람에 날이 갈수록 길은 더더욱 망가져가고 있었다.

올해(2013) 8월에 선교팀과 함께 신땅에 들어갈 때에도, 가는 길이 너무도 많이 파여 우리가 버스를 타고 있는 건지,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건지 구분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안그래도 '참 문제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얼마 전 인도네시아 친구에게서 진정 '해학적인' 사진을 전송받았다.

 

사진 속 오토바위 위에 놓여있는 피켓에는 'Lomba Nangkap Lele di Kolam Jln Negara'라고 되어 있는데, 번역하자면 '국도에 위치한 연못에서 물고기 잡기 대회'쯤 될 수 있겠다.
구덩이가 깊게 파이고 비가 오면 마치 연못처럼 변해버리는 그 길에서 '물고기 잡기 대회'를 개최하여, 간디의 물레 못지 않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주 정부에게 망가진 도로에 대한 불평을 전달하는 깔리만딴 사람들의 지혜와 유머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잠시잠깐의 감탄은 뒤로하고,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이 현실에서 나는 대체 무엇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나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어.렵.다.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