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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알기 전, 그러니까 선교사님의 10대 시절은 말썽으로 가득 찬, 소위 '문제아'의 삶과 다를 것이 없었다. 더 나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선교사님의 어머니께서는 그를 대전의 한 중학교에 입학시켰는데, 그때부터 함께 자취생활을 하던 고등학생 친척 형님에게 술을 배우며 다소 강도 높은 일탈이 시작되었다. (청소년 음주가 비단 요즈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하
.)

 술과 함께 하던 허랑방탕한 유학생활의 이야기는 끝내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어머니께서는 즉시 대전으로 그를 잡으러 내려오셨다
.

"
어머니께서 술독에 빠져 있는 나를 보고 이러다 애 버리겠다 싶어 시골의 한 미션스쿨에 나를 전학시키셨어. 그러나 그 날라리 기질이 어디 가겠니? 중학교를 다니면서 무려 27번의 정학을 당했었지. 지금 생각해도 나보다 못된 짓 많이 한 놈은 없었을 거 같애
."

 말썽도 가지가지였다. 강 건너 전라도 땅으로 몰래 넘어가 서리를 하다 들켜 흠씬 두들겨 맞기도 하고, 교회 가는 길에 구덩이를 만들고 오물을 부은 후 나무로 살짝 덮어 그곳에 주일학교 선생님께서 빠지시는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들과 작당해 교장 선생님 댁의 닭을 모조리 서리 해 먹었는데, 화가 머리 끝까지 나신 교장 선생님이 경찰에 신고하셔서 경찰서에까지 끌려간 적도 있다. 물론 자신의 제자들이 범인인 것을 알고는 되려 교장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제발 풀어달라고 빌게 되었지만 말이다
.

 후에 선교사로 헌신하고 나서도 그 일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교장 선생님께 사죄하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교장 선생님께서는 그 때 그 문제아가 선교사가 되었음을 매우 기뻐해 주셨고, 그 때의 죗값은 학교에 와서 학생들에게 선교에 대해 도전하고 지난날을 간증하는 것으로 치를 수 있도록 해주셨다
.

"
여러분, 저 뒷산의 울창한 나무가 보이십니까? 저거 다 제가 기른 겁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제가 27번 정학 당하면서 벌로 화장실에서 열심히 거름 퍼다 저 나무들한테 뿌려줘서 저렇게 큰 겁니다
."

모두가 구제불능이라 손가락질 했던 그 말썽쟁이 시절의 기억이 그로 하여금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보게 했다.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일을 하게 했다. 그 격려의 대표적인 수혜자가 바로, 현재 적도 신학교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재 Herry 교수님이다
.

 

 


 Herry 교수님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집안은 권세가 있었다. 아직도 낙하산 인사가 판을 치는 인도네시아에서 도지사(Bupati)를 지냈던 숙부가 제공한 공무원 자리도 마다하고 적도신학교에 남아 헌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임을 생각해볼 때 Herry교수의 결단이 참으로 귀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아름답게 선교사님과 동역하고 있는 Herry 교수도 왕년에는 꽤나 혈기를 부리던 청년이었다. 준수한 외모와 좋은 집안, 똑똑한 머리는 그에게 교만해질 여지를 꽤 많이 주었던 것 같다. 결국 1학년 때, 신입생 신분으로 선배와 거친 주먹다짐을 해 퇴학 위기에까지 몰렸다. 모든 교수진이 입을 모아 이 '건방진 신입생'을 퇴학시키자고 주장했지만, 선교사님 만큼은 선처를 요구했다
.

 "
퇴학 위기에 놓인 그 아이를 보는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그 심정을 제일 잘 알잖아. 나도 그랬었으니까. 그래서 저 아이를 우리가 놓치면 안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불러서 격려하고 정학 수준으로 처벌하게 되었지
."

(미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