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두 손에 짐을 가득 들고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며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뒤꿈치 뼈가 부러지는 '종골골절'이라는 것을 경험하였다. 다리 한 쪽 불편한 게 어찌나 내 삶을 뒤흔드는지, 그 어떤 것도 나 혼자 할 수가 없었고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했다.
불편함도 불편함이었지만, 그 때 나는 '과연 내가 나을 수 있을까?'라는 이상한 불안감에 사로잡혔었다. 지금의 아픔이 이렇게 심한데 정말 내가 치유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내 다리가 나으면...' 리스트를 만들어서 이것도, 저것도 해 봐야지!라고 생각했고, 그 중 하나는 보행이 불편한 장애우들을 섬기는 봉사를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정확히 반 년이 지난 오늘, 넘어졌던 그 자리를 유유히 내 두 발로 지나쳐 오다가 문득 느끼는 바가 있었다. 깁스를 풀고 내가 좀 살만 해지고, 이제 다시 뛸 수 있게 되자 그 때의 나와 했던 약속은 마치 없었던 것인 양 살고 있는 내가 보였다.
석사를 지나 박사과정에 들어온 지금, 처음 이 공부를 시작할 때 뜨거웠던 마음과 열정이 가치없는 것인 양 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부끄럽다. 자꾸 초심을 잊는 내가.
여전히 내 스스로에게 속마음을 들켜 뜨끔하게 되는 순간이 두렵고 싫다.